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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깨어있으라.

오늘 저녁을 먹다 내가 된장국에 특이하게도 노가리가 들어가 있다고 하자, 옆에서 아버지가 영양사가 주는 건데 어련히 알아서 했겠냐면서 그냥 먹으라고 장난스레 말씀하셨다. (하지만, 10 초쯤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가 만든 콩나물 무침과 멸치 조림이 달다고, 설탕이 남아나냐고 비아냥 거리셨다;)

영양사라는 단어를 기점으로 우연히 얼마 전 TV에서 본 뉴스(어디 교장이 친목 모임에 영양사 등 급식 종사자들을 불러 술과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는 내용)를 이야기 하게 됐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 참 어이가 없다는 내게 아버지는 그 사람들은 그게 몸에 배서 그런 거라고,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예전엔 말이야..."하는 뻔하고도 창피한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예전엔, 경찰서에 누가 잡혀 들어가면 문턱세라고 해서 그 잡혀간 사람 만나는데도 누구에게 돈을 줘야 했네, 선거에서 야당 후보자들은 제대로 선거운동 못했네, 여당 선거운동원들은 얼마씩 받았네 (노태우가 대통령 되려고 그때 돈으로 1조원을 썼다더라), 노동운동, 시위 하면 바로 맞고 잡혀들어갔네, 촌지 주는건 일상이었네 등등...

내가 참 어이가 없어서 "그 땐 왜 그랬대요?"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자 어머니가 그리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요즘도 분명히 있다며 실례로 우리집 이야기를 드셨다;
서울로 처음 이사왔을 때, 고모가 애들이 시골서 왔고, 다른 애들이 힘들게 할지도 모르고 하니 선생님한테 촌지들고 인사 한번 가라고 해서 그 없는 살림에(정말로 그땐 우리집에 돈이 없었다. 한달에 몇만원 하는 급식비를 못내서 어머니가 울면서 작은아버지에게 사정 이야기좀 해달라고 부탁해 작은 아버지가 학교에 오신 적도 있었다. 부모님은 따로 시골에서 장사하고 계셨으니까.) 5만원 씩 봉투에 넣어가지고 가셨단다. 잊어버리지도 않는다면서, 내 담임은 처녀였고 동생 담임은 아주머니였는데, 내 담임은 그렇게 안받는다고 거절을 했고 동생 담임은 "안주셔도 되는데..."하면서 얼른 책 사이에 끼워넣었단다. (그래서 내 담임은 결국 안받았어요? 하고 물으니 내 담임도 마지막에는 받았다고;;)
중학교 입학식 때 신입생 대표로 선서하고 (중학교 입학 전에 반배치 고사라는 것을 봤는데 그거 성적순으로 1, 2 등이 선서함; 내가 2등 -_-) 끝나고 집에 가는데 내 담임이 교장 선생님에게 인사 좀 하고 가라고 해서 (분위기가 촌지 건네야 할 것 같았다고 하셨음) 내키지 않았지만 정말 돈 만원이 없어서 인사만 하고 돌아오면서 괜히 걱정하셨단 이야기도..

나 참...

하기사 내 친구 아무개도 자기 아버지가 여당 쪽에서 일을 하셨는데 선거철만 되면 사람들 모아놓고 식사 대접했다고 내게 추억 아닌 추억을 말해준 적이 있었지...

이한열 선배 이야기, 전태일 열사 이야기, 전두환 이야기 등등 끊이지 않는 에피소드에 난 아버지께 "그 시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았대요? 왜 그렇게 멍청하게? 왜 그렇게 사람들이 무지막지 했지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도 그렇다.'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셨다.

하지만 난 나름의 답을 이미 내렸다.

사람들이 멍청했기 때문이다. 깨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겁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뉴스 다시 안보고, 더러운 세상 살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의식을 가지고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항상 깨어있으려고 노력한다. 근데.... 난 아직도 좀 비겁한 것 같다. 젠장.